★
- 엄기호: 제가 어렸을 때를 돌이켜서 보면, 공부가 학교에 한정되어져 있었을 때는 학교 밖에서 한몫할 때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한몫하는 것이 자존감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고요. ... 그렇게 한몫하는 것을 통해서 목소리를 가질 수도 있었죠. ... 예전에는 이런 환경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한몫한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감각을 가져볼 기회가 좀처럼 없어요. 지금 정말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몫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 27.
'한몫'한다는 게 뭘까?
어른들과 함께 지내는 단체 속에서 학생들끼리 한 팀이 되어 청년이란 이름 하에 함께 성장해가고, 리더쉽을 발휘해 이끌어주고 목소리를 내던 지난 시절들은 나의 학생생활에서 가장 큰 '한몫'의 원동력이 되어 준 것 같다. 수민양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가질 수 있을까? 경쟁 없이 온전히 한 개인들을 서로 위하면서 이끌어주고 그들을 대표해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결과 당당히 한몫을 챙겨 가져와 함께 공유할 수 있을까? 그런 좋은 경험을 해볼 기회가 수민양에게도 있기를~*
- ... 자기 얘기를 하고 이러면서 성장해가는 게 아니라 선생에게 맞춤형의 얘기를 하면서 그게 좋은 학생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선한 의도를 가지고 벌어지는 일이지만 배움의 현장이 그런 식으로 엔터테이닝을 하는 관계가 되는 거죠. ... 근대라는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자기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항상 두 가지 태도를 요구받습니다. 미래는 기회하고 과거는 성찰하는 태도입니다. 만사가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는 않기 때문이죠.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 않은 과거에 대해서는 성찰하며 교훈을 얻고 그 교훈에 입각해서 다시 미래를 기획합니다. ... 현실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그 간극을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찰이란 게 이뤄져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요? - 60.
책을 읽으면서 그저 훑어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저자에게 맞춤형 얘기가 아닌 내 자신의 얘기를 하고, 책 속 이야기와 정보가 현실에서는 엄연히 다를 수 있기에 그 '간극을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찰', 그 비스므리한 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도 필사한다. ^^a
- 엄기호: 공부를 '하는doing' 게 아니라 '구경'하는 거예요. ... 'undergoing 격는' 게 있어야 하는 데 그게 사라져버리는 거죠. 공부 '중독'이라고 하는데 중독될 '실재'는 없어요.
하지현: ... 분야에 따라서 공부 체계가 달라야 하죠. 그런데 우리는 요약정리 식의 공부만 가르치고 있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방대한 양을,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한눈에 들어오게 제공해줄 수 있는가가 교사의 자질이라고 오인이 되고 있어요. ...
엄기호: 굉장히 매끈하게 요약정리해서 정답을 향해 어떤 주저함도 없이 돌진하는 형태가 모든 공부의 전형이 되어 있고, 그런 식으로 공부해야지만 안심을 하고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죠. 이렇게 되다 보니까..의견이라는 것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이고, ...
하지현: 또 하나는 그런 경향이 워낙 강하다 보니 '디투어링 detouring'을 견디지 못해요. 서울에서 부산 가는데 KTX 아니면 비행기, 이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못해요. 국도 타고 가다가 재미있으면 중간에서 하루 자고 그러다 내키면 동해안으로 빠져서 7번 국도 타고 내려가고.. - 68~70.
이것을 일찍이 어린 학생 때부터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이런 것을 알려주는 선생님도 없었다! 지금도 없을 듯..
아이가 '공부'를 'doing 하는 것'으로 알게 하려면 친절하게 알려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몰라서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어느 한 전문가과정 영어쌤이 이런 말을 했는데, 수업 시연 중 writing 쓰기를 시킬 때는 'modeling'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즉, 학생들에게 예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영어도 하물며 그렇게 하는 데, 전반적인 '공부'법에 대해서도 '공부'란 '구경'이 아니라 'doing 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예를 들어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 엄기호: ... 지식인들이 자식에게 "내가 소위 공부를 통해서 여기까지 와봤지만 정말 별것 아니더라" 하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 그런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바깥을 알지 못하는 거예요. 여기서 나가면 정말 죽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가장 절박한 사람들이죠. 그 속에서 자신들도 죽고 아이들도 망가지는, 누구도 승자가 아닌 그런 형태에서 혐오만 생기는 거예요. '왜 자꾸만 저들이 이 판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공정하지 않아!' - 147.
147쪽은 잘 읽어야 한다. 잘못 읽으면 오해하기 쉽상이다;; 잘못 읽으면 물려줄 돈이 있는 부자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할 수 있기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말자는 데 있다고 본다. 어느 분야든지, 한 곳에만 너무 빠져서 그 곳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147쪽에서 비판받는 사람들이란 SKY대학을 바라보는, 혹은 '-사'자 직업을 바라보는 부류에 해당되는, 학원 뺑뺑이를 돌려가며 아이를 새벽까지 공부로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색다른 부류, 무용쪽에 있어보면서 비슷함을 느꼈다. 정말 '여기서 나가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듯 몇년째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과연 무엇에 절박한 사람들인가 의아했다. 예중,예고를 보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였다..
그들이 받은 박해, 그들이 몇십년 바쳐온 시간들 때문인지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이를 의심하고 오해하고 배척하려 드는 모습이 특이했다.
- 엄기호: ..상위..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공부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좌절이에요. ..앎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려요. '아는 게 참 재미있는 것이다'라는 걸 잃어버리죠. 앎의 핵심은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호기심이 발동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모르는 것을 만나면 두렵기만 하고 짜증이 나는 거예요. ... 결국 앎이라는 것의 가치와 의미 같은 것이 없어지게 되죠. "나는 헤어디자이너가 될 건데 나한테 <관동별곡>이 웬 말입니까? 미분 적분이 웬 말입니까?" 이런 말은 굉장히 슬픈 말이에요. 나는 좀 더 실용적인 공부를 바란다,라는 능동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앎이라는 게 가져다 주는 짜릿함, 기쁨, 쾌감은 아무래도 좋다는 거죠. - 160~161.
- 하지현: 제가 만나는 아이들한테 "하고 싶은 게 뭐니?" 물어보면 "없어요"라고 얘기하는데, 이렇게 대답하는 아이들이 갖는 나름의 이유가 몇 가지..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엄마가 나한테 웃기지 말라고 할 거야' ..엄마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정답이 아닐 테니까, 혼날 게 뻔하니까 "없어요" .. 공부라는 것, 알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 데에는 동기가 필요하거든요. .. 하나는 절박감이에요. '이거 모르면 나 죽어', '어떻게든 알아내야 해'.. 두번째는 경쟁심이에요. '쟤보다는 나았으면 좋겠어'.. 세번째는 '그냥 하고 싶어', '알고 싶어'.. 세 가지가 인간을 움직이는 추동력.. -163.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귀절들이다, 수민양에게도 나에게도.
나이들어 서평이란 핑계(?)로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앎이라는 게 가져다 주는 짜릿함, 기쁨, 쾌감'을 느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수민양은, 보통 아이들이 겪는 학교 공부라는 것과는 별개로, 예체능만 주로 다루는 단체에서도 그 '상위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이 겪을 수 있을 '좌절'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매번 이를 극복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엄마와 함께 노력한 수민양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다.
7개 외국어를 말할 줄 아는 성인 남자를 키운 한 어머니가 세미나에서 그러셨다, 못하는 것에 집중해서 시간 낭비 감정 낭비하지 말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앎에 대한 호기심',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잖은가?
앎에 대한 호기심이 충족되었으면 되었다. 너무 지나치면 147쪽 부류의 인간이 되고 말 것 같다..^^;; Oh~ No!
- 하지현: ..공부라는 것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적응력을 향상시켜주기 위한 방법론을 익히는 것이죠.
엄기호: '삶의 테크네'..살아가는 기술, 살아가는 기예, ..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서 터득되는 것과 삶의 과정 속에서 터득되는 것. 삶의 과정 속에서 터득되는 것..공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공부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죠. ... 그런데 문제는 살아가는 중에서 터득해야 하는 이 과정을 우리가 굉장히 위험시한다는 거예요. - 165.
★
- 하지현: '그렇다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뭘까'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첫번째는 핵심, 맥락을 잘 잡아내는 거죠. 둘째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많은 정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셋째가 진짜 공부를 잘하는 것일 텐데, 이치를 깨닫는 것이죠. ..나아가서는 나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가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겠죠. ... 정작 중요한 것은 셋째인데 거기에까지 마음이 미칠 여유가 없어요. ... 저는 순서를 볼 때 셋째를 목표로 하면서 첫째를 중심으로 흐름을 잡고, 그리고 둘째는 필요에 의해서 노력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야 진짜 공부가 되고, 쓸데없는 ,독이 되는 공부를 줄일 수 있어요. ... - 167.
- 하지현: ..교육과 공부의 차이.. 교육은 가르치는 것.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치고 배우게 할 것인가. 즉 효율성이라는 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반면 공부라는 것은 나의 주관, 즉 1인칭 시점에서 보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교육이란 말보다는 공부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써야 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정말 내가 알고 싶은 것, 익히고 싶은 것을 공부하는 주체의 관점에서 배우기를 바라보는 것이죠. ... - 173.
위 60쪽 이야기를 좀더 풀어쓴 귀절들이다. '성찰'하려면 첫번째 두번째에서 끝날 게 아니라 세번째로 이어져야한다.
- 하지현: ... 공부라는 굉장히 재미있고 설레고 즐거운 인간의 정신활동의 진수가 아주 재미없고 더럽고 불쾌한 감정적 기억으로 남게 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그래서 "너 공부 참 많이 했구나"라고 하는 말이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걸 많이 알지?"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처럼요. "저 사람 공부 참 많이 했네"라는 말이 궁극적으로 가방끈이 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지혜가 많은 성숙한 사람을 뜻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 174.
유영만 교수의 사이 전문가, 브리꼴뢰르의 이상적인 자격요건과 자질 중에 '박사(博士) 위에 잡사(雜士)가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하면,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말하는 '박사'를 비꼬는 말투가 아닌,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감정적으로 설득하는 체험적 지혜의 소유자 '잡사'를 의미하듯 존경까지는 못할지라도 인정, 존중하는 말투이기를 바란다.
- 하지현: ...(서략)... 인문사회대에서의 공부의 목적이 교수일 수밖에 없는 구조, 이 부분은 문제를 떠나서 현실이라는 거예요. ...(중략)... 현재 한국 대학의 문제는..대학에 무조건 가야 하는 거고, 대학에 가서 취업이 잘돼야 하는 거고, ... 그 고리가 더이상 유효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공부가 그 공부여서는 안된다는 거죠. - 179~180.
대학은 소위 '공부'를 하러 가는 곳이지 직업인 양성을 위한 곳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공부'를 하고 보니 특정, 특수한 곳과 함께 일하게 되고 취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여야지, 대학 공부가 오로지 취업만을 위한 것이라면 대학은 젊은 학생만 갈 수 있는 곳이 될 뿐이고, 그래서 현재 대학은 나이 들어서 가기 가장 뻘쭘한 곳이 되었다. 졸업하면 교수 혹은 취업이 되기 위한 대학이라면, 160쪽의 '앎의 호기심'과 167쪽의 세번째 '이치를 깨우치는 것'에 적합한 곳이 대학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보니, 정말 '공부'다운 공부를 할 사람만 대학에 가면 된다, 한 나라 학생 대부분이 반드시 거쳐야할 의무교육 같은 곳이 대학일 필요는 없다, 등의 말이 메스컴에 최근에 종종 내비쳐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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