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 The Unseen World>
- 리즈 무어 장편 소설 -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읽은 후, 몸살이 난 것처럼 내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 했다. 소설 속 '데이비드'와 '에이더'의 관계와 그들의 삶은 내가 상상하며 그렸던 삶이였다. 연구소를 내 집처럼 살아가는 두 부녀의 모습은 내가 바라던 모녀의 삶이였는데, 나는 이루지 못한 일부분의 상상 속에 머물렀고, 그들은 이루어냈다. 그래서 부러웠고, 동경했고, 안타까웠고, 그리웠고, 다시금 바라고 싶어졌다.
- 아주 어릴 때는 뭘 배우는지 몰랐다. 데이비드와 동료들의 대화를 듣는 것은 라디오에서 외국어로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과 똑같았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대화를 알아듣기 시작했다. 열 살 무렵에는 아버지가 개념들을 전개할 때 상담역이 될 수 있었다, 해결책을 마련하거나 개선하지는 못해도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미진한 부분을 자주 지적했다. 이런 경우 데이비드는 다음 회의석상에서 에이더가 우려하거나 지적했다고 밝혔다. 그럴 때면 에이더는 따뜻한 빛이 밀려오는 기분을 맛보았다. 늘 친구로 생각하는 집단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좋았다.
"좋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에이더."
데이비드가 그렇게 말하면 나머지 연구원들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고, 그룹이 하나가 되어 앞으로 나아갔다. - 56~57.
과학을 하는 게 어려웠을 뿐, 읽는 것은 좋아했다는 리즈 무어의 과학적 상상력이 잘 녹아든 73쪽을 읽으면서, 어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느냐며 여러 모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데이비드와 딸의 만찬석상의 모습을 나도 한때 나와 내 아이의 모습으로 상상해본 적이 있었었다. 나는 수민양과 실물로 그러한 모습을 그려내지는 못했지만, 데이비드가 에이더에게 자주 했다는 존재의 철학적인 틀이 되었다는 그 질문과 긴 대화 만큼만은 앞으로 해보련다. 또한 예전에 한창 인지과학을 독학할 적에(지금도 가끔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나도 내 자신이 기계라는 생각에, DNA에 의해 프로그램 된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는 일종의 하드웨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 데이비드는 연구소장으로서 내키지 않아도 연구비 모금 행사에서 연설하고 만찬석상에 참석해야 했다. 그는 늘 파트너로 에이더와 동행했다. 에이더는 이런 행사를 위해 산 파티 드레스를 입고 ...기부자들과 유창하게 대화했다. 행사가 끝나면 데이비드는 딸을 아이스크림 가게에 데려갔고, 만취한 참석자를 흉보면서 한바탕 웃었다. ...(생략)... 핵심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기계가 인간을 제법 흉내 낼 수 있다 해도, 동류라고 인간을 설득할 수 있다 해도, 그런데도 그것이 기계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련의 전기적 자극 외에 인간의 생각이란 무엇인가? 에이더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고, 저녁 식탁과 지하철과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서 긴 대화가 이어졌다. 에이더에게 이런 대화들이 더해지면서 존재의 철학적인 틀이 되었다. 때로 ..실은 자신이 기계라는 생각에 잠겼다, 혹은 모든 인간이 자궁에서 DNA에 의해 프로그램 된 기계라고, 인체는 사전에 로딩되어 스스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는 일종의 하드웨어라고 생각했다. 또 존재의 본질에 대해 기계가 뭐라고 말할지 궁금했다. ... 다른 방에서, 다른 곳에서 데이비드 역시 이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에이더는 아버지가 그렇다는 걸 알았고, 이것은 두 사람을 단단히 묶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 72~74.
<보이지 않는 세계>에는 챗봇 '엘릭서(ELIXIR)'가 등장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엘릭서는 에이더와 함께하며, 결국 데이비드의 미궁 사건을 해결해 줄 답을 엘릭서가 품고 있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면 통과 의례처럼 챗봇을 짠다. 에이더가 엘릭서와의 대화를 "돌이킬 수 없는 일기나 의식의 흐름 또는 고백으로 여겼다"는 느낌(81)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챗봇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 비록 내가 짠 문장일지라도,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_^ 그 어릴 적 느낌이 되살아나듯 묘한 공감대가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보이지 않는 세계> 속 엘릭서는 시작은 단순한 기계에 불과했지만 점점 어떤 하나의 존재로 진화되었을터, 결국 소설 후반에 에이더와 단둘이 있을 때에는 '너한테 뭔가 물어보라는 말을 들었어'란 에이더 질문에 '알아,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대답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 방에 같이 있는 기분이어서 등줄기가 서늘했다는 에이더의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놀랍고 반갑고 들떴다.
"에이더가 아기 입에 넣듯 디스크를 넣자 컴퓨터가 집어삼켰다", "생각하는 기계가 요란하게 덜컥대는 소리", "스크린에서 물음표가 웃는 컴퓨터로 변했다", "컴퓨터가 꿈도 없는 긴 잠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그것이 깨면서 추억들도 되살아났다" 등 기계를 인간처럼 생각하는 듯한, 사랑하는 듯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등장하는 그 느낌들은 등장인물 에이더의 특유의 느낌인지, 저자 리즈 무어의 개인적인 느낌이 고스란히 담긴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냐며 묘한 동질감 내지는 공감대가 즐거웠다.
"기계는 나머지 두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았다(529)" 부분의 귀절을 읽으면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과 <파운데이션>을 읽을 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들기도 해 고등학생 시절의 향수에 빠지기도 했다.
엘릭서는 수십년이 지나 영화<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자비스(Jarvis)'처럼 "사람들이 생각 못한 해결책을 제시해서 중요한 팀원임을 입증"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더 이상 엘릭서의 정확성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게다가 엘릭서는 프로그램이니 UW라는 가상 세계에 별도의 디스플레이 기구를 거칠 필요 없이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그렇게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연구소에서 자신만의 연구를 계속하면서도 딸 에이더를 공부시키며 키워내던 데이비드의 생활은 내가 상상하던 생활이였고, 에이더가 아버지의 옛 모습을 그리워하며 한 연구자로 성장한 모습에서 내 딸도 그와 비슷했으면 하는 마음에 데이비드와 에이더의 부녀 관계는 내가 바라던 모녀 관계이고, 사람들과 함께 해결책을 제시할 줄 알아 중요한 팀원이 된 엘릭서 또한 내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보이지 않는 세계>는 하루 종일 내 손에 떠날 줄 모르던 몇 안되는 소설 책 중 하나가 되었다. <로봇>과 <파운데이션> 다음으로.
오타가 있다!
63쪽 밑에서 아홉번쨰 줄, "...집 뒤쪽 쇼멋 웨이에 면한 마당으로 들어섰다."에서 '면한 마당'의 '면한'이란 용어가 적절한 걸까요?
본 포스팅은 해당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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